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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의 변천과 미적특성
우리의 한복은 민족문화의 일면을 상징하는 것으로, 우리 민족의 역사와 얼이 담긴 고유한 의복이다. 예로부터 한민족을 ‘白衣民族' 이라고 하였는데, 백색은 좋은 인연을 가져온다는 색채상징 때문에 선호하였고, 또한 염색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관계로 흰옷을 즐겨 입은 것으로 보인다.


그림 상대복식의 기본형


그림 남자 한복바지 전개도
곡선적인 재단과 봉재로 형태를 입체화 시키는 서양복과 달리 한복은 직선적인 형태를 구성하는 평면구성에 의해 만들어진다. 즉 평면적인 옷감을 직선적으로 재단하고 이를 봉재하여 평면적인 옷을 만들며, 이것을 다시 인체에 맞도록 남은 부분을 주름을 잡거나 접어서 끈으로 고정시키는 형태이다. 바지의 경우에는 마루폭이외 활동에 필요한 여유분을 주기위하여 사폭을 만들고 이것을 다시 큰 것과 작은 것으로 나누어 전후․좌우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구성방법이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우리나라의 자연조건과 민족적인 미적 감각을 잘 살려준 것이다. 이와 같이 한복은 평면구성으로 이루어져서 입었을 때 비로소 입체감이 형성되어 부드럽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특징이 있다.

그림 부석사 무량수전

그림 한복 저고리 배래와 도련의 곡선
미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한복의 아름다움은 외관으로 보이는 선의 흐름과 옷감이 지닌 색채의 조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추녀의 곡선과 같이 하늘을 향한 듯한 저고리 배래와 도련의 곡선이 동정의 예리한 직선과 조화를 이루며, 깜찍하고 뾰족한 작은 섶코의 선은 저고리 구성의 섬세함을 한층 돋보이게 해준다. 한복에 나타나는 이 같은 선의 흐름과 조화에서 우리는 선조들의 뛰어난 미적 감각을 느낄 수 있고, 여기에 한복 착용 시 형성되는 동적인 아름다움까지 가미하면 아름다운 선의 조화는 세계적으로 호평 받을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한복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일까? 과연 우리 선조들은 어떠한 옷을 입었는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삼국시대 이전 고조선의 복식에 관해서는 ‘增補文獻備考’에 “머리에 개수하는 법을 가르쳤다”라고 기록된 것을 바탕으로 이때부터 우리 고유의 복식이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三國志 魏志 東夷傳에 보면 흰옷을 좋아하여 흰 베로 만든 큰 소매달린 도포와 바지를 입고 가죽신을 신었다고 한다. 바로 여기에서부터 ‘백의민족’이라는 명칭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삼국시대의 복식은 주로 고구려 고분벽화를 근거로 추정하고 있는데, 고구려 복식의 기본형은 엉덩이 길이의 저고리(襦)와 통이 좁은 바지(袴)였고, 주로 하층계급의 사람들이 입었다. 상류층에서는 둥근 깃에 오른쪽 여밈(右衽), 넓은 소매(廣袖, 闊袖)로 된 엉덩이 길이의 저고리와 바지통이 넓은 바지(大口袴)를 입었는데, 이는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또 추위를 막기 위해 저고리 위에 입던 길이가 긴 포(袍)는 점차 의례적인 의복으로 바뀌어 갔다. 여자들은 바지를 입고 이 위에 치마를 입었는데, 치마는 일반적으로 길이가 길고 허리에서 치맛단에 이르기까지 잔주름이 있으며, 저고리와 마찬가지로 치마 끝에 선(襈)을 둘렀다. 또한 고구려의 고분벽화에는 책이나 절풍을 비롯한 많은 관모(冠帽)가 나타난다. 삼국지나 후한서 등에 “고구려에서는 대가와 주부는 책을, 소가는 절풍을 썼는데, 그 형태는 고깔 모양이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당서나 구당서의 동이전에는 “부인은 머리에 건귁(머릿수건)을 썼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 건귁은 후대에 계속 이어져 내려와 근세 이후 개성 이북의 여인들이 많이 쓰던 머릿수건이 이것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그림 고구려 남녀복식

그림 고구려의 포

그림 건귁

그림 조우관
백제의 복식은 고구려 고분 벽화에 나타난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곧 허리까지 오는 저고리에 바지(여자는 바지 위에 치마 착용)를 입었고, 의례용으로 포를 덧입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양의 「직공도」에 보이는 백제 사신의 옷 모양이 고구려 벽화의 인물상의 옷과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한층 확실시되고 있다. 백제인들의 머리 모양은 기혼녀는 머리를 둘로 나누어 정수리에 얹는 형태였으며, 미혼녀는 머리를 땋아서 뒤로 늘이거나 땋은 머리를 둥그렇게 앉은 뒤 한 가닥은 뒤로 내려뜨려 기혼녀와 구별이 되게끔 하였다. 그리고 남자의 머리 모양은 백제 무녕왕릉에서 작채(비녀)가 출토된 바 있어, 고구려 벽화에서 볼 수 있는 수계식 상투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림 양직공도의 백제 사신

그림 청동리(靑銅履)
한편 신라의 복식도 백제나 고구려의 기본복식과 다를 바가 없었다. 기본 복식 위에 입었던 포(袍)도 그 형태가 고구려나 백제와 같았다. 관모로는 일반인의 경우 가죽으로 만든 삼각형의 변(弁)형모를 많이 썼다. 또한 상류층에서는 금, 은, 옥 등으로 만든 금속제 관모를 예복용으로 사용하였다. 신라의 신 또한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이(履)와 화(靴)가 함께 착용되었는데, 이는 주로 여자들이 많이 신었고 화는 남자들이 많이 신었다.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면 기본적으로 북방 호복계통인 우리 고유복식의 구조 위에 삼국시대에 없었던 새로운 중국의 복식이 등장하는데, 관모에 있어서는 복두가, 의복에 있어서는 반비(半臂), 배당, 단령, 표가 그것이다. 이는 신라 진덕여왕 때 당나라의 힘을 빌어 삼국을 통일한 결과, 당(唐)의 공복을 받아들여 상류계층에서 착용함으로써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일반 서민계층에서는 여전히 우리 고유의 복식을 착용함으로써 복식의 이중구조가 나타나게 된다.

통일신라시대 복식상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것이 흥덕왕 복식금제이다. 이 금제에 따르면 통일신라시대에도 상의로 저고리(短衣)를 입었고 바지는 남ㆍ녀 공용이었다. 또한 여자들의 경우 외출할 때에 예복용으로 치마를 덧입은 것도 삼국시대와 다를 바가 없었으나, 통일신라시대의 치마는 표상(表裳)과 내상(內裳)이 있었던 점에 차이가 있다. 여기서 표상은 말 그대로 겉에 입는 치마이고 내상은 속치마를 뜻한다. 그러나 이 시대의 내상은 단순한 속치마였다기보다는 다분히 의례적인 용도로 착용된 듯 하다. 그것은 흥덕왕 복식금제에 진골녀의 표상이나 내상은 금제 대상에서 제외시킴으로써 화려한 옷감을 내상에도 사용했던 점에서 유추할 수 있다. 따라서 이시대 여성들의 치마는 매우 화려했을 것으로 보이며, 그 길이 또한 땅에 끌릴 정도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통일신라기의 화려하고 긴 치마가 다음 시대인 고려로 이어져 많은 옷감을 사용하여 넓은 치마폭을 제작하는 새로운 풍속도를 형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림 반비

그림 치마, 단의, 반비, 표

그림 총일신라 관복(중국풍)
이후 고려의 복식제도는 통일신라시대의 것을 계승하였을 뿐만 아니라 당, 송, 원 등 중국의 문화를 다각도로 흡수하였다. 왕복을 비롯하여 백관복에 이르기까지의 관복은 송, 원, 명의 제도를 받아 들였으나, 일반의 복식인 우리나라의 고유복식은 서민층에 의해 면면히 이어져 왔으며, 여성복식은 양반에서 기생에 이르기까지 큰 차이는 없었다. 그리고 충렬왕 이후 원나라의 부용국이 되면서 복식풍습 또한 몽고풍을 따르게 되었는데, 이후 공민왕 때 원나라가 망하고 명나라가 다시 중국을 지배하게 되자 몽고풍은 사라져 갔다. 그러나 저고리 길이가 짧아지고 소매가 좁아진 것은 몽고 복식의 영향이며, 이로 말미암아 허리띠가 없어지고 대신 옷고름이 생겨났다. 또 여자 화관이 당나라에서 전해 온 것이라고 하면, 족두리는 몽고인의 고고리에서 유래된 것이다. 특히 이 시기 문익점에 의해 목면이 전래되어 서민의 복식 생활에 커다란 전환기를 마련하였다.

그림 조반부인의 초상(몽고풍)

그림 고려말 여성복식의 재현
조선시대의 복식은 개국 초기에는 고려의 제도를 그대로 이어 받았다. 그러나 서민 복식은 엄격한 신분 사회제도에 묶여 직물의 종류, 색깔, 문양 등에 이르기까지 고려시대보다 한층 심한 규제를 받았다. 특히 조선조 남자 복식은 '포(袍)의 문화'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형태의 포가 발달하였다. 포는 단순히 방한을 위해 착용하였다기보다는 착용자의 신분이나 예의를 갖추기 위한 목적이 강하였다.

그림 단령

그림 도포
그림 주의(두루마기)
관복 중에 대표적인 단령은 현재까지도 신랑 혼례복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외에도 직령, 전복, 액주음포, 중치막, 창의(소창의, 대창의), 유학자들의 도포, 심의, 학창의, 주의 등 명칭도 다양하였다. 심지어 양반들은 집안에서 조차 바지, 저고리 차림은 용납되지 않았으며, 포의 모양에 따라 머리에 쓰는 관모도 다양하게 착용되었다. 고종(1863-1907년)대에는 복제개혁에 따라 소매가 넓은 옷의 착용이 금지되어, 점차 두루마기(周衣)가 대표적인 포제로 남게 되었다.
여자 복식은 치마, 저고리의 기본형이 서민복으로 이어져 왔다. 조선 초기에는 저고리의 길이가 길고 여유 있는 형태였으나 임진왜란 이후 작고 짧은 저고리에 풍성한 치마, 커다란 머리모양 등 하후상박(下厚上薄)의 전통 한복미가 나타났다. 조선조 중엽 이후 복식은 실용화 내지 평등화 쪽으로 기울었고, 말엽에는 양반과 서민 사이의 계층간 복식 차가 줄어들었다.

그림 조선 초기의 저고리(목판깃)

그림 조선 초기의 저고리(목판깃)

그림 조선 중기의 저고리

그림 조선 후기의 저고리

그림 조선시대 여성복 형태 변화
그림 조선 중기 상류층 여인의 예복

그림 하후상박의 복식미

그림 하후상박 의 예
근대 개화기에 이르러서 우리의 복식은 중국과 서양, 그리고 우리나라 고유의 복식이 융합된 양상을 보인다. 남자복식은 의복제도의 개혁에 의한 관복의 변천과 양복의 착용에서 복식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으며, 여자복식은 한복의 개량과 양장의 착용을 들 수 있다. 여자복식은 도시인과 일부 해외 유학생을 중심으로 양장이 착용되기는 했으나 남자만큼 크게 일반화된 상태는 아니었다. 대신 개화기에 등장한 개량한복 곧 통치마에 길이가 긴 저고리가 간편하고 활동적이라는 이점이 있어 교복 혹은 일상복으로 크게 일반화되었다. 하지만 농촌의 부녀자들은 여전히 전통 복식인 저고리와 치마에 마고자, 배자, 두루마기 등을 입었다.

그림 일제시대의 교복

그림 양장한 엄비
1920년대에 대폭적인 속옷의 개량이 이루어졌으며, 짚신이나 미투리 대신 고무신과 구두가 착용되었고, 버선도 양말로 대치되었다. 또한 1930년대는 개화기에 크게 논란이 되었던 내외용 쓰개가 완전히 없어졌다. 반면에 남자복식은 완전히 한복과 양복의 이중구조를 이루었다. 이렇듯 남자에게 있어서 양복이 여자보다 쉽게 일반에게 수용될 수 있었던 것은 남성이 여성에 비해 활동량이 많았던 만큼 한복에 비해 활동성이 좋은 양복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복은 도시인 중심으로 착용되었고 농촌에서는 대다수가 한복을 입었는데 한복에도 양복의 요소인 조끼, 마고자 등이 도입되어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의복이 등장하게 된다. 이밖에 머리에는 갓 대신 모자를 쓰게 되었다.

그림 1900년경 숭전대학교 성경교실의 모습

그림 마고자

그림 마고자, 조끼
이후 일제의 복식 단속에 대한 반발로 광복 직후에는 한복을 많이 입었다. 그러나 6.25전쟁 이후 미국에서 유입된 의복으로 다시 양복이 대중화되기에 이르렀고, 급기야는 평상복으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1953년에 한국 최초로 나일론이 수입되어 겉옷은 물론 속옷까지 나일론 일색이 되었다. 이렇듯 나일론이 짧은 시간에 일반화 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손질을 필요로 했던 전통 옷감에 비해, 질긴데다 세탁 후 손질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195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고유한복이 명절이나 행사 때에 입는 예복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그림 1950년대 한복

그림 1960년대 한복

그림 개량한복
이렇듯 오랜 시간을 우리 민족과 함께 해온 한복은 다양한 변화를 겪어 왔다. 그러나 근래 급격한 서구문명의 유입과 함께 우리 고유의 한복은 거추장스럽고 비활동적이며,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그 기능을 상실하고 겨우 의례복으로서의 역할만 이어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복은 또 다시 변화해 가고 있다. 개량한복이라 불리는 이것은 고유의 한복보다 실용적이면서 착용이 편안하게 제작되어 한복을 보다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천연염색한 옷감으로 제작한 개량 한복은 요즈음 웰빙(well-being)의 바람과 함께 다시 건강의복으로 현대인들에게 새롭게 받아들여지고 있다.